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스라엘-팔레스타인-아랍권 관계 (문단 편집) === 갈등의 배경 1 : 유대인의 이산과 시오니즘 === 다신교가 일반적이었던 고대 지중해 사회에서, 유일신교를 믿는 [[유다이아]]의 주민들은 특이한 민족 취급을 받았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다른 종교의 신들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는 미신에 불과하다."라며 유대교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인 전반의 유대인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통일한 이후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에 맞서 3차례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제3차 유대-로마 전쟁]] 종전 이후 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의 유대교 성지인 [[예루살렘]] 출입을 금지하였으며, 속주의 명칭도 유다이아 속주에서 일부러 유대인들과 대립하던 역사적 민족 집단의 이름인 [[블레셋]]의 이름을 따서 시리아-팔레스티나 속주로 변경하였다. 이 팔레스티나 속주라는 이름은 서기 4세기 로마 제국의 국교가 같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가 된 이후에,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 제국의 박해는 오히려 더 심화되면서 그대로 존치되었다. 유대교는 [[민족 종교]]로서 로마 제국의 소수민족인 유대인들만이 믿는 종교였기 때문에, [[종교적 소수자]]라는 유대인들의 입지는 변함이 없었고, 한 발 더 나아가 유대교는 같은 뿌리를 둔 유일신 신앙인 기독교의 경쟁 상대로 인식되면서 박해의 명분이 외려 강화되었던 것이다. 서기 5세기 무렵에는 로마 제국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을 되돌리려던 [[율리아누스]] 황제의 유대교 진흥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으나, 율리아누스의 사후 그대로 실패로 돌아갔고, 서기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유대교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을 시 막대한 불이익을 주는 종교정책을 취했다. 서기 4~6세기를 거치며 팔레스티나 지방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하나둘씩 기독교로 개종하는 상황에서, 일부 유대인들은 동로마 제국의 손이 닫지 않는 서유럽 일대, 페르시아, 아라비아 반도, 에티오피아, 인도, 등등으로 떠나면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점차 전 세계로 확대되기 이른다. 이렇게 전 세계로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20세기 들어서 [[시오니즘]] 운동의 결과 오늘날의 이스라엘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대규모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이어졌다. 물론 유대인들이 정착한 땅은 [[무주공산]]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주의 측에서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출애굽기에 묘사된 유대인들의 가나안 정착에 비교하지만,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로 개종한 유다이아 현지인들의 후손으로서 팔레스타인 땅에 정당한 지분권을 두고 있다. 아랍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의 편을 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